고(원)조선을 해석 할 때 꼭 알아야 할 기준들 / 건국년대 /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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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559회 작성일 23-07-10 22:07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8H753UobA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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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고(원)조선을 해석 할 때 꼭 알아야 할 기준들 / 건국년대 / 영토 / koreanhistoryyoun


고조선 문명이 생성하는 첫 과정, 즉 제 1기를 청동기 문화의 성립과 발전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특히 발전한 지역이 강 유역 및 해안가, 航路와 연관성이 얼마나 깊은 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고조선이 건국한 후 주변 국가 및 문명권과 어떤 방식으로 교류와 경쟁하며 발전했는가를 해양과 연관하여 살펴보았다. 이어 고조선 문명권의 중핵지역인 大同江 유역, 遼河 유역, 松花江 유역의 고고학적인 발굴성과들을 검토하여, 문화가 발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발해만의 위상과 역할을 중요시하고, 요하문명의 한 단계인 하가점 하층문화와 하가점 상층문화가 고조선과 연관 있을 가능성에 대해 기존의 연구성과를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필자가 설정한 ‘1山 2海 3江論’에 해당하는 공간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어떤 정도로 맺고 있었으며, 공동문명을 인식하였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자료의 부족이라는 한계와 함께, 연구의 부족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본문 제 2장에서 전개한 ‘신화적 시간’이라는 이론을 적용하여 문화적인 양상의 일부만은 살펴보았다. 고조선 문명과 직접 관련있는 고인돌 문화, 서해안의 ‘之’자형 토기와 벼농사문화, 동해안의 덧띠무늬 토기들은 강과 바다를 매개로 전파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제 2기로 설정한 시대에는 고고학적 유물과 사료를 분석하여 서기 전 23 세기부터 서기 전 12세기까지로 설정하였고, 다시 서기 전 17세기를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었다. 전기는 만주 일대와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서는 본격적인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  ‘遼河 文明圈’에서는 夏家店 상층문화 시대인데, 南北의 대부분 학자들은 이 문화를 고조선과 연관시키고 있다. 이 시대의 유물 유적의 분포도를 충분하게 인용하여 소개하였다. 

이 시대부터 동아시아 세계에서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등장한다. 특히 고조선 문명권과 연관성이 있고, 요서지방에 거주하였던 殷人들이 서남쪽의 황하유역으로 들어가 夏人들을 구축하고 商나라를 건국하였다. 

그 과정에서 발해안과 산동지역, 강소성 일대의 해안지대에 거주하였고, 黑陶의 龍山文化와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추정되는 ‘夷’의 존재가 등장했다. 이후 殷人들과 이들의 각축전이 벌어졌고, 남만주 및 중만주 일대에서는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고 고인돌들이 집중적으로 축조되었다. 한편 ‘훈죽(獯鬻’), ‘귀방(鬼方)’이라고 불리운 북방 종족들의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어떤 형식으로든 그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후기는 서기 전 11세기부터 서기 전 7세기까지로 설정했다. 서기전 11세기에는 商이 멸망하고 周가 세워졌다. 이후 商의 유민들과 周族들과의 싸움이 지속되면서, 箕子의 동천이라는 사건이 생겼고, 발해 연안에 있었던 해항도시국가들인 孤竹國 令支 등이 주족과 싸우면서 요서지역을 비롯한 동쪽으로 이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肅愼을 비롯한 조선으로 추정되는 國들 또는 종족들이 사료에 나타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貊‘ ’濊‘ 등으로 표현되는 실체들이다. 또한 북방에서는 험윤(玁狁) 산융(山戎) 등이 활동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방 초원 지대로부터 주민과 문화가 화북, 요서, 요동, 서북만주 일대로 들어왔다. 요서지방에서는 고조선의 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들이 제작됐고, 북방계유물인 북방식 청동검들도 제작됐다. 이 것들은 아마도 山戎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또한 중국식 동검들도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문화의 혼융현상이 벌어졌고, 남산근 101호 무덤처럼 동시에 발굴되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학자들이 비파형 동검을 만든 주체를 ‘東胡族’이라고 하면서 고조선과의 연관성을 부정한다. 하지만 고조선문명권의 지표유물인 것은 확실하고, 그러한 이유와 근거를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활용하여 상세하게 언급하였다. 비파형 동검은 만주 일대는 물론 한반도의 서북부 일대, 그리고 시대가 내려가지만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무덤양식도 적석총 등이 나타났다. 

후기 말에 해당하는 서기 전 7세기에는 ‘朝鮮’이라는 실체가 역사 기록에 나타나고, 중국 지역에서는 春秋戰國 시대라는 내부 질서재편전이 일어나면서 산동의 齊와 하북의 燕, 趙, 孤竹國, 朝鮮 등이 복잡한 관계를 연출하면서 군사적인 충돌을 하였다. 그리고 山戎 玁狁 등으로 표현된 세력들도 남하하였다. 

고조선의 초기 과정과 영토 및 영역이 강 및 해양과 연관이 깊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동아시아 세계에서 해양문화가 중요해졌음을 중국의 고고학적 유물과 사료들을 통해서 확인함과 동시에 고조선 문명권의 해양문화를 규명하였다. 


제 3기는 사료에 근거한 ‘歷史的 時間’으로서 서기 전 5세기부터 서기 후 1 세기까지이다. 이를 다시 전기와 후기로 분류했다. 전기는 準왕이 末王이었던 朝鮮의 성장과 주변세력과의 갈등, 중국지역에서는 춘추시대의 시작과 갈등, 진의 통일, 북방유목민족들은 흉노의 성장가 이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이 시작된 시대이다. 고고학적으로는 후기 청동기인 ‘세형동검’과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후기는 ‘위만조선’의 성립과 발전, 漢의 재통일과 한무제의 정복활동, 북방 匈奴의 팽창과 漢族과의 전쟁, 그리고 위만조선과 漢나라의 국제대전이 일어났던 시대이다. 

그 시대의 국제질서와 漢武帝의 정책을 동아시아와 유라시아의 일부까지 연결하여 규명하였고, 또한 한무제의 해양정책과 남방정책 등을 위만조선의 역할과 한반도 남부 및 일본열도의 상황과 연결하여 규명하였다. 따라서 고조선 문명권의 붕괴에 직접 연관이 깊은 ‘朝鮮 漢 전쟁 ’은 본격적인 동아시아 국제대전의 한 부분이었었으며, 좁게는 위만조선과 황해의 무역권과 질서를 둘러싼 전쟁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동아시아에서는 한제국과 중화문명이 정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윤명철 지음 :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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