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에게 함락 당한 고구려의 해양 방어성 / 1995년도의 비사성 모습 / koreanhistory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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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236회 작성일 23-11-08 22:26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Qky40dwZV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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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당태종에게 함락 당한 고구려의 해양 방어성 /1995년도의 비사성 모습 / koreanhistoryyoun


1995년도에 요동반도에 있는 수군사령부 비사성을 답사했다.


1.1.1.1. 비사성(卑沙城)

금현(金縣)의 금주(金州)시내에서 동북으로 20km 떨어진 우의향(友誼鄕) 팔리촌(八里村)의 동쪽인 해발 663m의 대흑산(大黑山) 위에 있다. 현지에서는 대흑산(大黑山)산성이라고 불리운다. 사료에서는 비사성(卑奢城)·비사성(卑沙城)·사비성(沙卑城)으로 불리운다. 

 성의 둘레는 5km이다. ????遼東志????에 따르면 내부에 우물이 2개 있었다고 한다. 성내부의 평탄한 흙단 가운데에서 연화문의 기와조각을 발견하였는데 점장대로 여겨진다. 

 

비사성은 요동반도 남단의 금주만·대련만·묘도군도가 만나는 곳에 있어 해양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비사성이 점령당하면 요동반도의 동부와 서부해안이 적의 수군 앞에 맥없이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득리사산성, 건안성 등을 거쳐 안시성까지 진군함으로써 요동방어의 핵심지역들을 배후에서 공격할 수가 있다. 안시성 공방전이 벌어졌을 때 이곳을 점령했던 장량이 수군을 이끌고 당태종군과 합류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비사성에서 안시성까지 2일 거리였다고 한다.

비사성은 금주만과 대련만이라는 동서 2개의 만을 동시에 관측하고 방어할 수 있다. 즉 동서의 양쪽 방면에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할 뿐 아니라 북상하는 적을 저지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고구려군은 598년에 요서의 해안지방을 선제공격해서 해안방위시설을 빼앗았다. 이후 수(隋)의 주라후군(周羅睺軍)은 동래를 출발하여 황해를 건너 평양성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중간에 풍랑을 만나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의 전황과 해상개황으로 보아 주라후군은 고구려수군에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후에 침략한 수양제(隋煬帝)는 본격적으로 수륙양면작전을 실시하였다. 614년의 공격에서 내호아군은 전략을 바꿔 수로군을 이끌고 비사성을 공격했다. ????三國史記???? 권 20 고구려본기 영양왕 25년.

   비사성은 그후에도 당군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았다. 645년에 장량(張亮)의 수로군은 등주(登州)를 출발해서 비사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정명진(程明振) 등이 야간에 서문으로 급습을 해서 결국은 점령당하였다. 그해 여름에 벌어진 5월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8000명이 죽음을 당했

비사성은  요동반도 해양방어의 핵심성이다.  발해와 서해를 양쪽으로 바라보면서 험악한 산(대흑산)의 정상부에 있다.

645년 장량이 지휘하는 당나라 수군과 공방전을 벌이다가 8.000명이 포로(또는 전사)가되며 점령당했다.


1995년도에 찍은 영상입니다. MBC tv "고구려를 찾아서"에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중국식으로 다시 만들어져 고구려성같지 않습니다. 



윤명철  지음

고구려 해양사 연구 / 고구려 해성연구 /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 한국 해양사 / 말 타고 고구려 가다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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