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사상인 '홍익인간'은 왜 논리적, 보편적 사상으로 못발전했을까? / 홍익인간 사상과 현대적 가치 시리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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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122회 작성일 23-06-08 19:56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eTDhcHULV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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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홍익인간 사상과 현대적 가치 시리즈 3

최초의 사상인 '홍익인간'은 왜 논리적, 보편적 사상으로 못발전했을까?  


2 ‘홍익인간’ 사상의 내용과 논리

1) 사상으로 계승 발전하지 못한 이유  

‘홍익인간’ ‘단군사상’ 등을 비롯한 우리 역사의 산물들은 왜 사상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민족사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을까? 

먼저 ‘책임론’을 주장한다. 개념을 규명하는 작업이 매우 부족했고, 보편적인 언어와 논리로 정의되지 못했다. 일부의 예외를 빼놓고는 선언과 구호적인 한계를 탈피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내적 요인들로서 추구한 세계관 및 사상의 특징 때문이다. 사상으로서 탐구할 내용과 형식, 분석 대상인 논리들이 소박하고, 구체성이 덜하다. 문자로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은 일연이 기록한 『삼국유사』이 처음이다. 문자가 없거나, 이용할 능력이 없는 부족하거나 없는 민족과 문화권은 소위 사상과 논리가 없었을까? 

역사를 보면 사상과 논리(관)이 없는 집단과 개인은 없다. 어떤 집단이든 ‘徵標(sign)’가 있고, 거기에는 자신들의 역사와 삶, 우주와 자기 집단, 인간을 설명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창조신화, 건국신화와 설화들, 몸짓(춤), 암각화, 문신, 의복, 장신구, 머리 장식, 무덤양식과 위치, 민속, 무구, 삶과 죽음(장송)의례 등은 ‘기호(code)’의 일종으로서 내적논리 또는 사상을 반영하는 징표이다. 비교적 늦게 등장하여 폭발적으로 활용된 것이 ‘언어’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언어조차 자유롭게 사용할 능력이 부족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자를 사용할 줄 몰랐었다. 때문에 고대 이전의 많은 사상들은 핵심을 대부분 ‘언설(discourse)’ 즉 ‘경구’·‘단구’로 표현했다. 우리는 공동체, 생활공동체, 역사공동체로서 3000년~ 4000년 전부터 존속했다. 원조선은 유적과 유물, 일부의 기록 등을 보면 문화가 발달했고, 정치력과 경제력도 뛰어났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내적인 논리와 신앙, 사상 등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둘째는 외적인 요인들로서 자존감이 부족하고, 외세를 의식한 정치논리 때문이다. 통일신라는 정체의 보존과 국제성을 위해 중국체제를 지표로 삼고, 사대를 지향가치로 삼았다. 고려 또한 원형 사상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 비록 일연, 이승휴 등이 단군의 존재와 조선의 실재, ‘홍익인간’ 등을 기록하고 언급했지만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시대언어를 활용해서 재해석한 사상화 작업은 부족했다. 조선은 성리학 체제였으므로 전통 사상과 자의식을 계승하고, 시대언어와 학문, 논리로 재해석하는 일은 오히려 퇴보했다. 다만 말기에 체제 붕괴와 국가 멸망이라는 위기 속에서 사상과 철학, 논리의 필요성을 자각했고, 서양종교 및 사상, 학문 등의 영향으로 고유사상과 홍익인간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특히 동학·증산·대종교 등의 종교운동과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단군과 홍익인간을 민족을 구원할 사회사상, 사회개혁의 논리로 수용하고, 재해석했다.  

셋째는 사상의 정의와 성격을 고등종교, 고등문명, 거대국가, 복잡한 논리체계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전적 의미의 사상은 ‘인간관’·‘세계관’·‘운동관’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논리(logic)’가 분명해야 한다. 또한 논리를 실현시키는 정치·경제·문화·생활 등의 시스템이 구비되고, 활용되야 한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논리와 시스템으로 바탕으로 종교·예술·생활 등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향유되야 한다. 

넷째는 고대국가라는 시대적인 한계와 함께 원조선의 체제 때문이다. 원조선은 조직력이 강한 농경문화를 영위한 정주형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아니었고,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이 집약된 율령국가가 아니었다. 느슨한 관리체제와 통치방식을 가졌고, 제정일치적인 성격이 강한 일종의 연맹국가였다. 또한 정신을 우위에 두고, 형식을 소홀히 대하며, 사상을 정치 논리와 결합하는 것이 미약한 사회였다. 때문에 원조선의 문화와 사상은 ‘비논리적’이고, ‘비수리적’이며, ‘비합리적’인 면이 많았고, ‘비조직적’이고, ‘비형식성’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문화에 경도되고, 서양 근대학문을 방법론을 오해한 후대 사람들은 원조선의 자연·생태·사회·정치·문화·인성 등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고유 사상을 탐구하는 태도와 노력이 부족했다.


윤명철 지음 : 단군신화, 또다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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