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빈틈] 중국 문명 세력의 혁명적인 변화 | 유목민의 후예 황토 고원의 희주 집단이 농경 문명 세력 상족이 설립한 대읍상을 정벌하고 중국 역사의 전면에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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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26회 작성일 24-06-26 18:38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MW-Fp4KQi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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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빈틈] 중국 문명 세력의 혁명적인 변화 | 유목민의 후예 황토 고원의 희주 집단이 농경 문명 세력 상족이 설립한 대읍상을 정벌하고 중국 역사의 전면에 나서다


중국 최초의 문명세력인 상나라는 22대왕 무정시기에 주변세력을 제압하고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그가 죽자 힘을 잃어가기 시작하는데  24대왕 조갑시절부터 조상신인 상제에게 점괘를 묻는 복사행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을뿐만 아니라 조상신을 뜻하는 제(帝)가 선대왕의 묘호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상나라는 기본적으로 같은 조상신을 모시는 씨족집단중 가장 강력한 세력이 세습을 통해 대읍상을 이끌고 나머지 씨족들이 족읍과 소읍이라는 연맹체제를 구축해 안으로는 수도를 보호하고 밖으로는 이민족을 통제하는 읍제국가였는데  조상신인 제의 절대적 권위가 훼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상신인 제가 권위를 잃어가자 강력한 결속력을 갖고 있던 연맹체제가 느슨해지면서 이민족에 대한 통제력에 균열이 생긴 것이며 급기야 대읍상의 왕이 조상신인 제를 호칭하게 되는데 그 증거가 29대왕 제을과 30대왕 제신입니다.


갑골문에 따르면 상나라 마지막왕 제신은 동이족 세력인 인방과 계속 전투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주방을 대표하는 씨족집단 희주가 서방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후대의 사가들에 의해 무왕벌주라 이름붙여진 성군과 폭군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중국 최초의 농경 문명세력으로 등장한 상나라가 서방 유목민의 후예인 희주에게 패배하면서 황하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것이며 이후 희주는 주나라를 설립하여 중화의 중심세력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중국역사에 있어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나라는 상나라의 많은 문화를 계승하였지만 전통적으로 화하라는 민족개념으로 볼때 상나라는 화하에 포함되지 않으며 주나라의 등장이야말로  중국역사의 시작이자 화하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황하문명세력의 교체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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