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빈틈] 은허의 발굴과 갑골문 해독으로 드러난 상나라 대읍상의 역사는 사마천의 기록과 어떻게 다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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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4-06-26 18:38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PsYIU15hi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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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빈틈] 은허의 발굴과 갑골문 해독으로 드러난 상나라 대읍상의 역사는 사마천의 기록과 어떻게 다른가 ?


무정시기 상나라는 씨족집단을 중심으로 성벽을 갖춘 읍이 행정단위로 등장하는데 대읍은 상나라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외성으로 둘러싸인 중심구역이며 상나라 왕과 연합관계에 있는 씨족의 우두머리가 지배하는 족읍과 소읍으로 구성된 정치적 연합관계를 구축하였는데 이는 봉건제도의 시초가 주나라가 아닌 상나라에 있슴을 알 수 있습니다.


전차사용에 대한 증거는 무정제위때 처음 나타났는데 최근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서쪽의 중앙아시아 대초원에서 사육한 품종의 말이었슴이 유전적으로 확인되었으며 기본적인 무기로 활과 검 창도끼등 전형적인 청동기시대였슴이 드러났는데 전차가 전투에 이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갑골에는 전쟁에 대해 묻는점복이 많았는데 대체로  강족과 이족 그리고 인방 귀방 토방 주방과 같은 주변국가의 정벌문제가 점복의 주된 대상이었는데 여기에서 주방은 훗날 무력으로 상나라를 정복한 주나라를 말하며 점복술에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았을때 무정시기부터 적대적인 관계였슴을 알 수 있습니다.


갑골문에는 무정이후에도 전쟁을 위한 복점기록이 꾸준히 등장하는데 왕조 말기인 제을 제신 시기에 들어 동이족으로 대표되는 인방과의 과도한 전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면서 서쪽의 주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으며 이틈을 타 관중지역의 희주가 서방의 여러부족을 모아 대읍상을 공격하자 상나라는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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