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학계 얼마나 반성해야할까? 그리고 미래는 2 (전문강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456회 작성일 23-06-08 19:56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_S5ISe2LygI

본문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한국 역사학계 얼마나 반성해야할까? 그리고 미래는 2 (전문강의) 


근대역사학은 역사학의 존재 이유, 즉 목적에 대한 논의를 게을리하거나 회피해왔다. 근대문명의 비자발적인 도입과 능동적인 역사변동의 좌절, 식민지체제로의 강제편입 등으로 인하여 전통시대에서 행한 사회적인 역할을 잃어버렸고, 단순한 전문직 혹은 기능공의 단계로 전락했다. 인류의 역사과정이 말해주듯이 집단(민족)자아의 상실은 사회와 역사발전의 왜곡을 가져오고, 내부의 인간들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포기하고 비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한다. 역사는 정체성의 자각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과거를 매개로 현재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근대 역사학은 출발부터 이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껏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학은 ‘가치 지향성’을 지녀야 한다. 한국역사학은 근대역사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일본제국주의자와 역사학자들의 책략으로 ‘객관성과 가치중립적’이라는 미사려구로 위장한 ‘沒價値性’을 역사학의 본령으로 삼았다. 역사학이 가치지향성과 때로는 정치적인 목적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예들은 허다하다. 최근에 벌어진 소위 동북공정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등은 물론이고, 근대역사학의 출발부터 있었다.

근대역사학은 의도적이건 미필적 고의건간에 현실투항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학문 내적인 면(왜곡되었지만)에 안주하였다. 당연히 주제나 소재 및 내용 등의 모든 면에서 실감이 떨어졌고, 오류가 심각하여 민족구성원들의 인식을 왜곡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이러한 학풍은 지금껏 이어져 현실성이 결여됐고, 실제외적인 일을 강조하므로써 역사와 인간, 역사와 국민 간에 괴리감을 낳았다. 


근대역사학은 역사연구와 해석에 편향성이 강하게 작동하였다. 역사학은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해부하고 해석하며, 치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근대역사학은 분석의 도구를 지극히 제한하여 문자를 압도적인 우위로 하는 연구방법론을 채택하였으며, 그것도 승자나 지배계급 중심의 관찬사료였으며, 또 하나는 중국사료와 일본사료들이었다. 근대역사학의 편향성은 일종의 소재주의로 나타났다. 따라서 역사연구에서 인식이 실종되고, 연구방식에 ‘교조성’을 띄게 되고, 기계적 사고에 안주하면서 존재물과 사건을 파악하는데 ‘맥락관계’를 등한시하고 있다. 또한 거시적인 관점보다는 미시적인 관점에 사로잡힌다. 

역사학은 다양한 학문의 도움을 받아 역사학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사회과학 예술, 자연과학 등에서 역사연구에 직접 이익을 제공하거나 해답에 조언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과 객관을 표방해온 한국역사학은 과학의 인용도, 과학적인 사고도 하지 못하면서 ‘推論과 常識’으로 학문을 가장하고 있다. 

근대역사학이 가진 또 하나 치명적인 한계 가운데 하나는 ‘현장주의’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장과 역사에 대한 애정이 결핍되었고, 개념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 만주일대와 해양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조사하지 않았거나 기피한 탓에 우리 역사를 반도적 시각이나 일국사적시각에 매몰되게 하였다.

이러한 학풍에서 연구된 한국역사는 오류를 지적하면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근대역사학은 다수의 지식인들이 갖고 있는 우리역사에 대한 부정확한 통념과 오류 및 비하적인 태도 등을  양산하는데 일조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근대역사학이 만들어 놓은 오류는 무엇일까?

가장 큰 것은 半島史觀의 굴레이다. 반도사관은 일본인들이 적용한 식민주의 사관의 핵심논리로서 현재까지도 우리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내용이다. 대륙과의 무관성을 강조하고, 해양활동이 미약했으며, 바다에 포위된 제한되고 불충분한 공간이라는 해석이다.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을 우리 역사로 해석하거나 편입시키는 일을 주저한 것이 최근까지의 근대 역사학이다. 또한 정치사에 집중하다보니 분열과 분단을 강조하였고, 정작 문화공동체나 경제공동체 혹은 정신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규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는 근대 역사학이 우리 역사를 일국사적인 관점으로 국제관계 소홀하게 취급하였다. 일부의 내부역사를 제외하고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해야 실상을 정황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사고가 배양되고, 대응전략도 마련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터는 한반도와 만주일대 그리고 해양을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 속에 있다. 따라서 고대사는 일국사적인 관점을 넘어서 일민족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일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역사상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근대 역사학은 농경적 유교적인 관점으로 우리역사와 문화 전반을 해석하였다. 우리가 고대에 활동했던 역사의 터는 농경문화, 수렵삼림문화, 농목문화, 해양문화가 골고루 발달한 곳이었다. 또한 근대역사학은 통일적 유기적인 역사해석이 부족했으며, 역사의 결정체인 민족의 형성과 발전을 하나의 계통도로서 적성해내지 못한 점이 있다. 종족과 민족 개념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부족해서 우리역사의 상당한 공간과 시간과 주체를 우리 역사 영역에서 이탈시켰다.  그 외에도 근대역사학은 용어 사용의 비객관성, 주객의 혼동 등 적지않은 한계가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글


최근글


새댓글




참한역사칼럼 바로가기
참한역사신문 바로가기
참한역사 동영상 바로가기
新바람 한민족역사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