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노래 2- 1 | '백암성'(고구려 슬픔) 2) 안시성의 짝성인 백암성의 역사와 형태, 미( 美), 마음(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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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280회 작성일 23-05-31 23:41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znSfyS8tr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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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고구려 노래 2- 1 | '백암성'(고구려 슬픔) 2) 안시성의 짝성인 백암성의 역사와 형태, 미( 美), 마음(心)을 본다. 


백암성은 요양시 동쪽 30㎞ 지점에는 등탑현 연주성촌이란 마을에 있다.  요동성, 안시성(해성)과 함께 고구려 요동3대방어성이다. 북쪽에 蓋牟城, 서쪽에 요동성(요양) 그리고 남쪽에서 안시성이 지켜주는 산성으로 沙河(북)와 太子河(남)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백암성은 원형인데,  북쪼과 동쪽에 성벽이 남았고, 북쪽의 성벽에 높이 10m정도의 마면(치)가 5개 남아있다. 치와 치 사이는 56m이다. 북쪽 성벽 위에서 1Km 정도 동쪽으로 걸어가면 30m 높이의 점장대가 있다. 후대에 봉화대로 이용되었다. 이 아래, 남쪽성벽은 수십 m의 가파른 절벽이고, 아래에 태자하가 흐른다.  '구당서'에 “ 산을 등지고 물가에 바짝 닿아 사면이 험하고 가파르다”는 내용과 동일하다. 치의 아랫부분은 무게를 지탱할 목적으로  굽도리식으로 쌓아 올렸다

 645년에 당태종은 요동성을 함락시킨 후에  이적을 앞세워 백암성을 공격했다. 이적은 서문쪽으로 공격했고 당태종은 서북쪽으로 침입했다. 동쪽(절벽)과 남쪽(태자하)은 접근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항전했으나 성주 손대음이 항복했다.  당태종은 백암성을 함락시킨 후 그곳을 '암주'라고 하고,  항복한 성주인 손대음을 자사로 삼았으나 곡 고구려가 수복했다.  


 백암성 -불놀이

             윤명철


불이다.

묵은 족장 소리,  

녹슨 장죽 끝에 삐져나와 

첩 첩 산골 곱게 울린다.

 

굴속, 속에 여문 잣씨 처럼 박힌 사람들 방긋 방긋 터져 나온다.  

흰 불이다.

그러께 모셔다 

제사 지낸 유화부인의 명주 치마 같은 흰 불길 

늦 가을 수국처럼 풍성하게 피워 날린다.

불 잎

단풍처럼 날리면서

파랑 하늘 새하얗게 태우면서

설 익은 볼 차게 식히면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 혼절시킨다.


불놀이다.

하늘과 산 골에 눈꽃 들 

휘릭휘릭 

날리면서

묵은 때들 

활 활 불사른다.

세상 맑게 소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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