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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광개토태왕 제1부 동방의 알렉산더, 고담덕(高談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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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849회 작성일 23-05-21 05:53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tp0k2YzF0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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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광개토태왕 제1부 동방의 알렉산더, 고담덕(高談德)

18세 청년 왕 고담덕! 즉위 이듬해 백제와 거란을 모두 공격한다


- 거란 공격으로 백성의 신임을 얻다 

옛 거란의 땅 내몽고 자치구에는‘대영자’라는 지명의 마을이 있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강의 이름은 '까오리' 즉 고려강이다. 1,600여 년 전 이곳에 즉위 2년을 맞은 고구려왕 담덕이 이끄는 군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거란족을 공격, 정벌하고 포로로 잡혀있던 고구려인들을 해방시켰다. 그것은 국경을 침범해 약탈을 일삼던 거란에 대한 경고이자 백성들의 지지와 신뢰가 필요했던 새로운 군주 담덕의 신고식이었다. 


- 백제의 대동맥을 막다 

4세기 백제는 중국과 해상무역을 주도하는 동아시아 최강의 국가였다. 고구려는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대립했고 급기야 371년엔 평양성을 기습한 근초고왕의 군대에 담덕의 조부 고국원왕이 사망했다. 담덕은 즉위 이듬해 즉시 임진강 인근의 백제성 10여개를 함락했고 이후 경기만과 서해로 가는 백제의 관문이었던 관미성을 함락해 임진강 수계의 내륙 수로와 중국에 이르는 서해 항로의 요지를 장악했다. 


- 전쟁을 할수록 강해졌던 나라, 고구려

담덕은 남쪽 영토 확장을 위해 거란족의 8부 중 하나인 ‘비려’를 공격했다. 그들의 본거지는 ‘염수’, 즉 ‘짠 물의 땅’이었다. 담덕은 시라무렌강 중상류에 위치하고 있던 소금호수 ‘염수’로 진격해 유목민족이었던 거란을 치고 그들의 가축을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특히 말은 기마전투에 능한 고구려에는 필수적인 존재. 고구려는 염수를 정복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가축을 확보했다. 그는 정복한 집단의 자원과 힘을 활용해 다음 전쟁에 투입했고 그로 인해 고구려는 잦은 전쟁에도 경제적으로 피폐해지지 않았다. 담덕은 전쟁에 빠진 정복군주가 아니라 합리를 추구하는 경영형 군주였다. 


- ‘고구려 판 인천 상륙작전’으로 백제 무릎을 꿇다

관미성 함락으로 서해 항로를 잃은 백제 아신왕은 계속해서 반격해왔다. 수세로 일관하던 담덕은 백제의 공세가 끊이지 않자 결단을 내린다. 고구려 판 인천상륙작전, 담덕은 한강, 미추홀, 남양만 3가지 진로로 수륙양공을 펼쳐 백제 도성 ‘한성’을 포위했다. 끝까지 저항하던 백제 아신왕은 결국 담덕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담덕은 그러나 백제를 점령하지 않았다.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하고 또 상대방을 포용해 줬단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개토대왕은 궁극적으로 포용과 자비심을 발휘함으로써 시간이 해결해준다 언젠가는 고구려 안에 다 포용되고 한 가족이 된다는 그런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었단 것이죠." - 이도학 교수 -


그는 즉위 5년 간 남으로는 아리수의 백제를 치고 북으로 거란을 정벌했으며 한반도에서 중국에 이르는 서해 중부 항로를 장악했다. 담덕은 고구려 제국을 거느린 새로운 통치자이자 동아시아 최고의 정복자였다.


신역사스페셜 70회– 광개토태왕 2부작 제1부 동방의 알렉산더, 고담덕 (2011.6.2.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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