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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물현대사]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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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643회 작성일 23-05-24 09:32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HHQauONBt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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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물현대사]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KBS 20041112 방송 


1949년 1월25일 반민특위는 친일 고문경찰로 유명한 노덕술을 전격체포한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은 노덕술의 석방을 지시하고 반민특위 무력화에 나섰다. 

당시 반민특위 위원장은 김상덕이었다.


◼︎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그는 1919년 일본 유학생 시절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였다. 이 일로 옥고를 치르고 그는 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김상덕은 1944년 임시정부의 문화부장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 1948년 제헌국회 때 고향인 경북 고령에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1949년 1월, 반민특위가 구성되었고 친일파의 처단은 새로운 국가 건설에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었다. 김상덕은 반민특위의 위원장으로 선출돼 해방 직후 민족의 과제였던 친일 청산의 과업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 반민특위의 수난과 좌절

반민특위는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을 시작으로 친일문학인 이광수, 독립선언 33인의 한 사람인 최린의 체포 등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역사적 과제를 이루어나간다. 하지만 반민특위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친일파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위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으며, 국무회의에서 체포된 친일파의 석방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의 관사를 방문해 직접적인 관여를 하기도 했다.


◼︎ 무산된 ‘친일파 청산’

친일경찰 노덕술의 체포는 반민특위의 험난한 앞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앞장 섰던 친일경찰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노덕술의 체포는 경찰 전체의 위기로 다가왔으며 경찰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1949년 6월6일 경찰은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위의 특경대원을 체포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반민특위는 힘을 잃기 시작했고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 역시 무산되고 만다.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은 계속되는 압력과 탄압에 민족의 과제였던 친일청산을 이루지 못하고 사퇴하고 만다.


◼︎ 이루어져야 하는 친일파 청산의 꿈

김상덕 역시 반민특위 역사와 함께 그렇게 잊혀졌다. 친일경력자가 독립운동가를 국가유공자로 심사하고 때로는 스스로 독립운동가였음을 자처하던 시대. 

김상덕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1990년에서야 겨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납북인사였기 때문이었다. 김상덕의 독립운동은 복권이 되었지만 실패와 좌절로 끝난 반민특위 활동은 아직 복권되지 않았다. 이제 김상덕은 우리에게 자신이 못다한 친일청산의 역사를 다시 복권시켜달라 말하고 있다.  친일파들은 일제시대 때는 전 국민이 친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지식인인 자기들에게 올 수밖에 없는 수난이었다고 변명한다.


인물현대사 58회 – 미완의 역사 친일청산, 반민특위 김상덕 (2004.11.12.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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