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해륙 외교정책 시리즈 2 | 전면전이 불가능하고, 협박용인 요나라의 속셈을 간파한 서희의 외교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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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109회 작성일 23-05-30 21:28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mAhIYPOeE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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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전면전이 불가능하고, 협박용인 요나라의 속셈을 간파한 서희의 외교전략 | 고려의 해륙 외교정책 시리즈 2 


고려의 위치는 송 및 요나라 양쪽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이 때 해양외교는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서희는 항로를 개척하고 7년만에 고려의 외교를 재개시킨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 후에 고려와 송나라의 해양을 통한 외교 및 교역은 고려사회 및 동아시아의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발해의 옛땅인 대동강 이북을 놓고 고려와 요는 갈등이 벌어진다. 요나라는 고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요구하고 있었고, 고려는 반응을 보이지 않자 침략 쪽으로 정책을 바꿨다. 

결국 993년 8월, 요나라의 동경 유수인 소손녕은 요나라의 80만 대군을 이끌고 안융진 공략하였다. 패전한 고려는 항복과 ‘할지론’을 주장했고, 서희는 왕과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거란이 쳐들어온 원래의 뜻은 이 두 성을 찾으려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옛 땅을 찾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출진한 서희는 소손녕과 마주 앉아 담판을 지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철수할 명분과 이익을 어 회유했고, 거란의 성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요나라의 군사를 철수하고, 고려가 청천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280리 땅에  성을 쌓고, 매 년 사람을 왕래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해서 거란의 1차 침입은 끝났고, 고려는 강동 6주를 차지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성공은 동아시아에 전개되던 국제질서의 실상, 즉 고려-거란-송-거란 및 서하 여진 등 여러나라들 간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외교를 한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의 직책에 걸맞게 군사적인 상황과 특히 거란의 수뇌부인 소손녕이 진실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꿰뜷고, 거란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을 취했다. 지금 우리는 서희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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