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과 알렉산더 대왕 / 역사의 천재 광개토태왕 시리즈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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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604회 작성일 23-06-09 00:53본문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광개토태왕과 알렉산더 대왕 / 역사의 천재 광개토태왕 시리즈 트레일러
역사의 천재, 광개토태왕 시리즈. 트레일러
광개토태왕은 391년에 18세의 나이로 등극하여 22년간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넓혔고, 자의식이 강했으며, 군사전략에 탁월했다. 한민족이 국제국가적인 성격이 강했던 시대의 태왕, 즉 왕 중의 왕인 태왕이다. 삼국사기에는 그의 이름이 ' 담덕(談德)'이며, 성격은 웅혼하고 위엄이 있으며, 대범하고 빼어난 뜻을 지니고 있고, 시호는 광개토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당대의 평가를 받은 그가 등극한 4세기 말과 5세기 초는 우리가 맞이한 20세기 말과 현재 21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세계인 동아시아의 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고, 정치의 주역들이 교체되며, 문명의 질이 전환하는 대혼란의 시대였다. 국내적으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위기상황에 처해있었다. 나라도 민심이 흉흉하며, 전쟁은 계속됐고, 백성들은 굶어주는 궁핍한 상태에서 불확실한 상태로 미래를 맞으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 상황 속에서 등장한 태왕은 위기에 처한 고구려를 구원하고, 빠른 시간에 강국으로 만들었고,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질서의 중심에 놓고자 했다.
태왕은 국가발전의 큰 틀을 갖고 동서남북의 군사작전을 전개하면서 기마병을 동원한 수륙양면 작전들을 펼쳐 영토를 확대했다. 군사적인 우위를 토대로 삼아 동아시아 세계에서 정치와 외교의 중핵(CORE)조정 역할을 했다. 아울러 경제력의 상승과 백성들의 풍요로운 삶을 실현시킬 목적으로 경제영토(NET)를 확대했고, 물류망을 확대하고 네트워크화하여(HUB) 주변의 지역 및 국가들과 무역을 하는데 최대한의 이점을 끌어냈다. 이 무렵에 동아시아 세계는 다양한 종족들과 문화들 간에 교류가 확산되고, 고구려는 이미 제국의 위치에 올라 ‘다종족적 국가’ ‘다문화 국가’가 되어 갈등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손민족과 ‘原조선 계승성’을 토대로 융합과 상생의 세계관을 적용하면서 개방정책을 펼쳤다. 따라서 고구려는 문화적으로도 정체성에 충실하면서도 보편성을 갖게 했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대에 고구려가 중핵조정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고, 그 시대에 동아시아에 평화구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가 국력(POWER)이 강하고 문화, 경제 등에서 중국 및 북방의 강국들과 대등하였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은 인식의 전환, 해양력의 강화, 대륙의 중시, 정치 군사력을 강화시켜서 성공한 것이다.
광개토태왕은 우리 민족의 시원국가인 원조선(原朝鮮)을 발전과 이상국가의 모델로 삼아 재발견(re-discovery)하고 재부활(re-naissance)하며 재건국(re-foundation)한, 즉 多勿한 나라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제 다시 그의 정책과 능력, 세계관을 모델로 삼아 ‘고구리즘(KOGURISM))’을 개화시키고, 환생(re-re-foundation)해야 한다.
참고문헌
윤명철
1997 말타고 고구려 가다(고구려 유적답사기)
2000 고구려 산성과 해양방어체제(공저)
2003 고구려 해양사 연구
2004 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
2004 고구려의 정신과 정책
2005 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
2006 장수왕 장보고 그들에게 길을 묻다
2007 광개토태왕, 생각의 지도를 넓혀라
2011. 6 만주대륙에서 고구려에 길을 묻다
2011, 6 고구려 유적답사 안내서
2012 2 윤명철 해양논문 선집 8권
제 7권 고구려와 현재의 만남
2013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2018 , 고조선 문명권과 해륙활동
2019, 장수왕, 그에게 길을 묻다
2021, 고구려 해양방어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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