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설 비판 4부 | 칠지도의 글자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학자들의 치열한 싸움. | 신설 소개와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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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656회 작성일 23-06-09 00:53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jd0f9deHO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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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임나일본부설 비판 4부

칠지도의 글자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학자들의 치열한 싸움 | 신설 소개와 국제관계 


명문의 해석(특히 방점 친 부분)을 놓고 여러가지 이설과 문제점이 생겼다. 우선  ‘태 ?’라는 연호이다. 칼의 제작연대와 관련되는 미묘한 사항이다. 주로 369년인 동진의 ‘太和’ 설이 일반적이었다.  일본은 백제왕이 헌상한 것으로 상행문서로 주장한다. 김석형과 이병도 등은 태? 는 백제의 연호라고 주장했다. 

소진철 등도 한국의 입장에서 해석했다. 최근에 홍성화가  "칠지도와 일본서기"라는 책에서  ‘태○4년을 전지왕 4년. 408년으로 해석했다. 또 최근에 박남수가 "백제 전지왕 ’奉元四年‘銘 칠지도와 그 사상적 배경" 논문에서 태화를 ‘봉원 4년(전지왕 4년.408년)으로 해석했다. 

태화 년도와 무관하게 국제 역학관계, 특히 백제와 왜의 관계로 볼 때 백제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근초고왕은 백제 최대의 정복군주로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한강 이북의 땅과 황해중부해상권을 장악하여 대중국교통로를 열었다. 뿐 만 아니라 마한을 멸하여 남부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대왜 교통로를 확보하였다. 따라서 근초고왕이 야마도 조정에 칼을 봉헌한다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구나  이 명문은 보면 경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백제왕이 후왕인 왜의 지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되었으며, 하행문서로 되어있다.는 주장들이 있다.  특히 백제인들이 상륙한 후에 정착한 지역의 후나야마 고분은 백제계 문화의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김석형 : "조일관계사" 등 참고

윤명철 지음: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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