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기록하고, 훨씬 더 잘 이용하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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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412회 작성일 23-06-09 00:53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igavJlrM-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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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발해를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기록하고, 훨씬 더 잘 이용하는 일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발해와 관련한기사가 거의 없다. 조선 후기, 18세기 후반에 유득공 등이 관심을 가졌다. 이후 신채호, 그리고 연해주의 독립운동가인 장도빈이 연구를 했다. 발해사에 관해 

 1990년대 이전까지 가장 많은 연구를 한 것은 일본이다. 그 다음 중국, 북한 순이다. 러시아는 최근에 들어서 연해주 고고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국은 2003년 11월까지 단 3명의 박사학위가 있을 뿐이었다.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이다. 일본은 몇가지 이유때문에 발해연구를 한다.

첫째, 현실적인 이유때문이다. 만주를 이용하고 점령하려면, 지역의 자연과 역사를 연구해야만 한다. 그들은 결국 만주국을 세웠다. 또한 1920년대 중반에 오면 만주로 진출하는 전략의 하나로서 두만강 하구를 거점으로 삼는다는 이론을 제기한다.    당연히 발해의 역사와 산업 무역 문화 등을 연구해야 한다.     

둘째, 발해에 관한 기록은 일본측에 가장 많다. 발해국은 727년에 처음으로 파견한 사신단을파견하여 망할때까지 34번을 파견하였고, 민간인 1100명이 도착한 적도 있었다. 발해인들의 정체성, 무역활동과 무역품목, 동해를 건너는 험란한 여정, 또 그 시대 신라와 일본, 그리고 발해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실상들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있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 파편, 목간 등에도 관련 사실들이 있다. 셋째, 한국(조선)에 대한   우위를 주장할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발해사신단의 활동을 기록한 사서는 일본의 역사책이다.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을 우위로 하는 서술방식을 취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록들을 일제시대와 연관시켜 오용하기에 적합했다.

넷째, 실제로 신흥 일본국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많이 살았고, 때문에 일본국이 발해국에 파견하는 사신단은 초기에는 이들 고구려 유민들이 담당했다.   다섯째, 일본은 독도문제와 더불어 동해(그들의 일본해)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고대부터 동해에서 활동한 사실들을 발굴하고 인식시켜야 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사회, 우리 역사학자들은 ?  


윤명철 ":한국해양사" " 장보고 시대의 해양활동" "고구려 , 역사에서미래로" 등 책 외에  논문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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