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조선족은 도망자인가? 독립운동가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121회 작성일 23-06-08 19:56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rcdKWpKewJI

본문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고려인,조선족은 도망자인가? 독립운동가인가?


조선은 왕조의 부패와 19세기에 들어와 연속된 홍수 및 한재 등의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함경도와 평안도 등 국경지역의 백성들은 만주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96년에 의병장인 유인석은 부대원들을 거느리고 환인(桓仁)현에 정착하였으며, 그 후 환국하였다가 다시 통화(通化)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1907년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용정시 해란강 유역에 위치한 조선인 마을이 147개였다. 그런데 1910년에 국권을 상실하자 본격적으로 농사와 상업을 목적으로, 또는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의 여러 지역들, 러시아의 연해주 일대, 심지어는 하와이를 비롯한 아메리카로 건너가 정착하였다. 1910년도에는 중국 전체에 조선인들이 약 20만 명 거주하였다. 그리고 15만 명이라는 압도적인 숫자가 간도지역에 거주하였다. 그 후 1920년에 이르면  약 46만 명이 거주하였고, 1930년에 이르면 6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은 독립군이 활동하는데 인적자원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지원을 하였고, 군사적으로도 도움을 주었다. 1945년에는 전 중국에 약 170만 명의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고국으로 귀환하였고, 남은 사람들은 중국의 조선족으로 변하여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이루고 있다.  

러시아에는 1863년에 처음으로 두만강 근처인 크라스키노 부근에 13가구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또 조선인들이 입국하여 불라디보스토크에 ‘신한촌’을 건설하였고, 파르티잔스크, 우스리스크, 나홋카 등에도 마을을 이루었다. 1900년까지 연해주 지역에 이민해 온 고려인은 약 3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학교를 세우고, 독립전쟁에도 참여하였다. 최재형, 이상설을 비롯하여 안중근 등은 이 무렵에 독립전쟁을 벌였었다. 1910년 후에는 무려 6만 명을 넘게 되었고,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이주민의 수가 30만 명에 이르렀다. 일부의 통계에 따르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기까지 약 4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러시아는 조선인(고려인)들이 일본을 도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스탈린은 이주명령을 내려서 고려인들은 6,000Km나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었다. 1937년 10월 25일의 운송책임자였던 에조프가 상부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고려인들은 124개 열차를 통해 36,642가구, 171,781명이 40여 일 동안 강제이주 되었다. 그런데 열차로 이동하는 도중에만 500 여 명이 숨졌고, 모두 2만 여 명이 강제이주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대부분 현재의 카자흐스탄 지역, 우즈베키스탄 지역, 키르키즈스탄 지역에 버려져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 후 쏘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고려인들은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흩어진 채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다.

 구소련이 붕괴한 후에 무국적자가 된 고려인들이 있다. 현재 전체 고려인의 10%에 해당하는 약 5만 명의 무국적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고려인도 있는데, 대부분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이다. 이들 속칭 ‘까레이스키’ 즉 고려인들은 지금껏 타국의 국적을 갖거나 또는 무국적자로 살아가면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디아스포라이다.


윤명철 지음. : 유라시아 세계와 한민족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글


최근글


새댓글




참한역사칼럼 바로가기
참한역사신문 바로가기
참한역사 동영상 바로가기
新바람 한민족역사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