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사」 분석3 | 준왕(準王) 은 평양에서 "남하"하지 않았다.(평양 위만조선 기술 문제점)

페이지 정보

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546회 작성일 23-08-27 12:26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LjxaFAOIlFI

본문


[매림 역사문화TV] 「부산시사」 분석3 | 준왕(準王) 은 평양에서 "남하"하지 않았다.(평양 위만조선 기술 문제점)

표지영상에 "과" 가 "와" 로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침 8시부터 PPT 만들고 후다닥 영상 만들어 올립니다.


과연 준왕은 평양에서 위만에게 정권을 빼앗겨 남쪽으로 피해 왔는가?

위만은 피난민을 이끌고 현재의 압록강을 넘어 준왕에게 SOS를 요청했는가?

중화사관에 믈든 고려와 조선의 학자들은 자칭 소중화를 표방하며 기자의 가묘를 한반도 평양에 만들고 숭배했으며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평양에 위만조선, 한사군 낙랑군을 끌고 들어 왔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사관, 반드사관을 만들면서 이 조작된 중화사관의 논리를 국정 교과서로 만들어 1902년부터 조선인들을 교육했다. 

2023년 한국 고대사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속국으로  중국 교과서에 기록되었고, 한반도 남부는 가야 =임나 라는 논리로 가야사와 전라도 천년사를 난도질 되었다. 

과연 준왕이 위만에게 빼앗긴 땅은 어디였는가?

부산시사의 평양 위만조선 기술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글


최근글


새댓글




참한역사칼럼 바로가기
참한역사신문 바로가기
참한역사 동영상 바로가기
新바람 한민족역사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