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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역사이야기] 3편 |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 재건길 (구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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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68회 작성일 24-08-18 22:37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0q5XocywE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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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역사이야기] 전라도 역사이야기 3편 |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 재건길 (구례~보성)


1597년 8월 3일 

백의종군의 형벌에서 벗어나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은 곧바로 전라도 구례로 향했습니다.무너진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전라도가 최적지였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군관 9명과 병사 6명을 데리고 구례 석주관에 도착했습니다. 

석주관은 예부터 진주에서 구례, 남원을 향해 넘어오는 왜적을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였습니다.


구례 현감 이원춘을 만나 일본군 이동에 대한 전황을 보고 받은 이순신 장군은 날이 저물무렵 구례현청에 도착해 성 북문 밖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곳에서 손인필과 그의 장남 손응남이 곡식과 올감을 가지고 이순신 장군을 찾아왔습니다.조선 수군 재건에 희망을 담아 바친 올감은 이순신 장군에게 큰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1597년 8월 4일  

손인필의 집을 출발한 이순신은 곡성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 적막한 현청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순신은 옥과에서 피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몰려든 백성들을 위로했으며, 피난민 가운데 젊은 장정들은 조선수군에 자원하기도 했습니다.


순천 부유창으로 행선지를 정한 이순신은 석곡강정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곳이 대황강변의 능파정입니다.


1597년 8월 8일 

석곡을 떠나 부유창으로 향한 이순신은 후방 병참 창고인 부유창이 소각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낙담하며 그당시 참담한 심정을 난중일기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순천부읍성에 도착한 이순신은 성내를 둘러보던 중 무기고에서 많은 양의 무기가 쏟아져 나오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무기를 획득하고 주변의 승려와 의병들도 합류하면서 조선 수군은 조금씩 모습을 갖춰 나가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순천부읍성을 떠나 낙안에 도착한 이순신은 많은 백성들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때 마을의 원로들이 이순신에게 어렵게 마련한 곡주를 올리자 이순신은 안타까움과 기쁜 마음으로 잔을 받았습니다.전쟁통에 터전을 잃고 고생하는 백성들을 보며 이순신은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1597년 8월 9일 

벌교를 지나 조양현에 도착한 이순신은 군량 보관 창고인 조양창을 살폈고 다행히 군량미가 온전히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군량미로 허기진 배를 채워 사기가 높아진 군사들을 이끌고 이순신은 오랜 인연이 있던 박곡마을의 양산항의 집으로 향했습니다.양산항의 집은 비어 있었지만 곳간에는 식량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양산항의 집에서  머물다 보성읍성으로 향한 이순신은 열선루에 도착하게 됩니다.열선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누각으로 이순신이 이곳에 머물며 수군 폐지 불가를 역설하는 장계를 올렸고 한시 '한산도가'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선을 확보하기 위해 배설에게 군영구미로 전선을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린 이순신은 내륙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인 군영구미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배설을 만나지 못했고, 전선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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