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탐(探)] 고려 최정예 부대, 삼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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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854회 작성일 23-05-23 21:42본문
[YTN DMB - 한국사 探] 고려 최정예 부대, 삼별초
40년을 걸친 대몽항쟁 속에서 삼별초는 고려의 화려한 부활을 꿈꿨다.
몽골의 침입 직전인 1230년에 조직되어 남쪽 끝 제주도까지 내려가 대몽항전의 역사 44년을 기록했던 조직, 삼별초.
무인정권 붕괴 후 삼별초는 조선시대까지 역사상 대표적인 반역 집단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몽골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치열하게 저항하던 집단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
1225년 몽골의 사신이 압록강변에서 피살되고 이를 계기로 1231년부터 몽골은 고려침입을 단행하였다.
내정간섭을 요구하고 약탈을 일삼는 몽골에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한 고려는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게 된다.
강화도는 개경과 멀지 않으면서 바다로 둘러싸여 몽골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점과 개경으로 운반되는 지방의 조세와 공물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였다.
강도가 몽골군에 침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궁궐과 주요 시설물을 여러 겹으로 축조된 3중 성곽 구조였다.
강화도의 지리적 이점과 고려시대의 도성 방어 전략이 합쳐져 수도 개성과 동일한 구조의 도성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1270년 고려는 39년 만에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환도한다.
이에 반발한 삼별초 세력은 강화에서 진도로 거점을 옮기고 몽골과 개경 정부에 저항하였다.
그들은 진도를 거점으로 한 해상왕국을 구축하고자 했다.
진도 용장성에 자리를 잡고 승화 후 왕온을 왕으로 세우며 정통 고려정부의 계승을 자처했다.
1271년 결국 진도 삼별초는 여몽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왕으로 추대된 승화 후 왕온과 배중손 장군이 죽임을 당하면서 삼별초의 고난이 이어지고 삼별초는 제주도로 진입하게 된다.
제주에 진입한 삼별초군은 석축기술과 판축기법을 동원하여 항파두리성을 짓게 된다.
고려정부는 제주 삼별초를 이끄는 김통정 장군을 회유하고자 하지만 김통정 장군의 거부로 무산되자, 결국 삼별초는 제주도에서 여몽 연합군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몽골에 끝까지 맞서 고려의 자주독립을 지켜내고자 했던 고려의 최후 항전, 그 중심에는 삼별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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