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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가야에 여전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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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465회 작성일 23-05-23 21:23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ffpfTlDZ6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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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HD역사스페셜] 가야에 여전사가 있었다. 


- 가야의 여성전사, 과연 실재했는가?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베일에 둘러싸인 금관가야의 실체를 밝혀줄 무덤이 발견됐다. 갑옷과 철제투구로 무장한 채 순장 당한 세 구의 인골들이 나란히 한 무덤에서 발견된 것! 인골 분석 결과 이들은 모두 20~30대의 여성으로 밝혀졌다. 

또한 보다 정밀한 분석 결과 이들의 다리근육이 보통 여성보다 훨씬 발달해 있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철제투구로 무장하고 남다른 다리근육을 가진 이 여성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김해 예안리 57호분에서도 여전사의 흔적이 발견됐다. 기마병 말갖춤새는 물론 22점의 철촉과 철창 등 주로 남성전사의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것이다. 특히 함께 출토된 칼은 이 여전사가 지휘관의 위치에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 금관가야에 여전사가 등장한 배경은? 

금관가야에서는 5세기 이전까지는 여전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시기 여성들이 전사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4세기 동아시아는 일대 격변기였다. 그동안 북방경영에 주력하던 고구려가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서 백제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한반도 남부에서는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금관가야와 신라 간의 전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신라는 고구려와의 제휴로 금관가야를 압박하고, 이에 금관가야는 백제와의 제휴로 맞서면서 한반도는 격동의 장이 된다. 이에 금관가야는 무기체계를 정비하고 기마전술을 도입하고, 여전사라는 전사집단을 양성하게 되는 것이다. 


- 왜는 금관가야의 용병이었다! 

중무장한 막강한 고구려와 신라에 위협을 느낀 금관가야는 이에 맞서기 위해 무기체계와 전략 전술을 혁신시켰고 외교라인을 전방위로 가동시킨다. 백제와는 군사적 동맹을 맺고, 외국에서 용병까지 동원한다. 그렇다면 이때 금관가야가 동원한 용병은 과연 어디서 온 누구였을까?

당시 동아시아 철 생산권과 분배권을 장악한 철의 왕국 금관가야는 김해 앞바다를 국제교역항으로 삼아 동아시아에 철을 공급하는 막강한 해상왕국이었다. 이에 4세기 야마토정권은 일본열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 가야의 철을 얻고자 한다. 4세기 국가의 존속이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야는 왜에 철을 주는 대신 병력을 요구했던 것이 아닐까? 


- 금관가야의 여전사들, 가야의 재기를 위해 일어서다 

특히 서기 400년 철갑으로 무장한 기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5만 대군의 침입으로 금관가야는 사상 최대의 타격을 입게 된다. 이후 금관가야에서는 여성들까지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전사로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해체돼 가는 가야, 그리고 해체를 막기 위해 전장으로 나선 우리 역사 최초의 여성전사를 만나본다.


HD역사스페셜 14회– 가야에 여전사가 있었다 (2005.8.5.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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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 탐라국
작성일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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