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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로 본 전쟁사, 활에서 총까지 (KBS_2012.11.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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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24-05-20 23:05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0YOw7Yefk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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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저널 그날] 무기로 본 전쟁사, 활에서 총까지 KBS_2012.11.방송


▶ 00:00 역사스페셜 타이틀


▶ 00:24 한국의 무; 1부 활의 전쟁

조선 전기는 우리 역사상 기병의 능력이 가장 우수하게 발현된 시기였다. 조선 전기, 조선군은 [오위진법]에 따라 활기병은 전체 기병의 60%를 차지하며 전투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북방 기마민족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북방 영토 개척이 활발하던 조선 초기, 살상용 주력무기로 쓰였던 ‘편전’은 적들이 가장 두려워한 조선의 비밀병기였다. 

고구려의 활인 각궁은 다른 나라의 활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물소 뿔과 쇠심줄 등을 사용해 탄력성을 극대화시킨 무기였다. 이런 강력한 활로 무장한 고구려기병은 고구려가 동아시아 최강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요소였다. 


▶ 47:34 한국의 무; 2부 조총, 조선의 명운을 바꾸다

1592년 임진왜란. 왜군이 한양을 점령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일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금껏 보지 못한 강력한 무기, 조총 때문이었다. 조총은 임진왜란 초기 전세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조선은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진왜란 초기, 수세에 몰린 선조는 이에 맞설 계획을 감행했다. 우선 조총을 만들 것을 지시하여 1년도 안 되어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훈련도감을 세워 조총병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심기일전 노력한 결과 조선 병사의 사격술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심지어 청나라 태종에게도 알려질 정도였다. 1658년 러시아가 나선정벌로 흑룡강 성까지 영토를 확장하자 청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조선에 조총부대 파병을 요구했다. 이에 신유장군과 200여명의 조총군은 러시아에 맞섰다. 이 전투는 러시아 선적 11대 중 7척을 격파하고 러시아군의 대장을 사살해 조청 연합군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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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 탐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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