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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전] 붓과 총을 들었던 여성, 의병장 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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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555회 작성일 23-05-22 07:08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P_8X_M-qV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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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전] 붓과 총을 들었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조선독립단 3인의 수장, 그중에 윤희순이 있었다.

평생을 바쳐 항일투쟁의 길을 간 최초의 여성의병장 조국의 위기 앞에서 여자이기보다는 항일투사이길 바랐던 윤희순.

나라를 잃고 망명길에 올라 죽음보다 더 힘겨운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 보수 유학자 집안의 맏며느리 윤희순 

1895년 민비 시해를 기점으로 조선 각지에서는 항일의병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다. 위정척사파의 보수적인 유생들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이때 국권수호를 외치는 한 여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윤희순이였다. 

춘천과 제천 일대의 의병운동을 이끈 고흥 유씨 가문에 시집온 윤희순. 

그녀는 누구보다도 항일저항의지가 남달랐다. 그러나 보수적인 유학자 집안의 맏며느리였기에 집을 떠나 의병활동을 하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윤희순은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의병 후방 지원과 함께 여성의병대의 필요성을느꼈다.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가’와 같은 의병선동가를 지어 밤낮없이 부르고 다녔고, 노래의 힘은 강했다. 1907년 정미의병 봉기 당시 70여 명에 달하는 여성의병대가 조직됐다. 


- 만주 망명, 여성의병대장에서 항일투사로 

1911년, 윤희순 일가는 중국 망명길에 오른다. 한일합방 이후 더욱 악랄해진 일제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윤희순은 요령성 환인현에 노학당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워 반일사상을 고취시키고 독립투사를 양성했다. 이후 무순으로 건너와 아들 유돈상, 사돈 음성국과 함께 조선독립단을 조직한다. 그것은 윤희순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된 항일무장 단체였다.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 아들을 독립운동에 바친 어머니

윤희순은 사랑하던 가족들을 모두 항일 투쟁과정에서 잃는다. 만주에서 조국해방을 보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둔 시아버지, 남편, 며느리. 그들의 죽음은 윤희순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1935년 6월, 조선독립단 청년들에게 강의를 하던 장남 유돈상이 강의를 마치고 처갓집에 머물던 중에 일본경찰의 습격을 당해 처참한 고문 끝에 7월 죽는다. 서른다섯 살에 낳은 첫아들이었다. 


- 조선선비의 아내 윤희순

사랑하는 가족의 잇단 죽음. 76세의 윤희순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일생록’을 통해 남긴다. 중국 망명생활을 시작한 뒤 칠십 평생을 낯선 곳을 전전하며 쫓겨 다녀야 했던 떠돌이 생활이었다. 시아버지 유홍석, 남편 유제원과 윤희순 그리고 아들 유돈상 유교상 3대에 이은 항일투쟁. 이것은 불과 100여 년 전 우리 할머니, 혹은 그 할머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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