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천재' 세종대왕의 정책과 사상-1 | 국제 질서 활용해 자주국방에 심혈. 인본주의자…백성들의 생활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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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387회 작성일 23-05-31 23:58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Fn6fqWgwY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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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역사의 천재' 세종대왕의 정책과 사상-1 | 국제질서 활용해 자주국방에 심혈. 인본주의자…백성들의 생활력 강화. 


'역사의 천재' 세종 대왕의 사상과 정책 

‘역사의 천재’란 어떤 성격과 능력을 갖추었을까?

머리가 좋고,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력과 현상의 불확실성을 파악하는 지혜를 갖췄고, 더불어 모든 사람을 아끼고, 시대와 자연까지 돌보는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타인과 조직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난관을 극복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역사의 천재들이 등장할 때 역사는 급변하고, 동 시대의 사람들은 그 덕분에 풍족함과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단군, 고주몽, 김춘추, 왕건, 이순신 등은 우리 역사의 천재들이었고, 특히 세종대왕은 그러한 기준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세종대왕. 이도(李祹). 

1397년에 태어나서 1418년 6월에 갑자기 세자로 책봉되고, 태종의 선택으로 두 달 만에 4대 임금이 되었다. 피비린내와 풋내를 벗지 못했던 조선은 즉위한 1418년부터 과로와 당뇨병으로 운명한 1450년까지 32년 동안에 질적으로 변신했고, 고려를 없앤 명분과 조선을 존속시킬 힘을 동시에 얻었다. 

불가사의하다. 

그의 업적들을 보면 한 인물이, 한 시대에 이렇게 의미깊고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를 역사의 천재로 만들었을 시대상황들, 정책에 참여한 인물들, 업적들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살펴본다. 

첫째, 젊은 임금은 야망과 권력의지를 가진 건국세력들을 견제하면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승정원을 강화시키고, 도승지(비서실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1420년에 집현전을 설치하여 젊고 실력이 뛰어난 학자들로 신권력집단을 양성했다. 둘째, 성리학을 활용하여 ‘성(性)’과 ‘법’ ‘률’로서 합리적인 국가 체제의 토대를 완성시켰다. 귀족,무신, 권문세족 등 가문에 근거한 고려 후기에 대한 반동이었고,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된 건국세력들을 견제하는 정책이었다. 셋째, 건국의 정당성을 세우고, 정치의 명분을 분명히 할 목적으로 이론들을 만들고, 역사서들을 편찬했다. 말 년인 1445년에는 질병의 고통을 무릅쓴 채 조선의 창업과 가계를 찬양할 목적으로 ‘용비어천가’의 제작에 몰두했다. 

'삼국사기'를 애독한 그는 우리 역사의 가치와 조상들의 소중함을 알고, 1443년에는 '자치통감훈의'를 편찬했고, 죽음 직전까지도 '고려사'를 편찬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또한 1429년 7월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단군과 관련된 기록을 인용하고, 북부여 동부여 등의 역사를 서술한 것은 세종 시대의 인식과 결과물이다. 또 1444년에는 전통역(曆)과 원나라·명나라의 역, 정확한 이슬람역을 참고하여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했다. 이는 천체의 운행을 정치 행위에 비유해서 나라의 자의식을 높이려는 시도였는데, 명나라가 알면 심각한 외교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이미 즉위 2년인 1420년에 청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를 만들었고, 1434년에는 갑인자를 제작했으므로 이러한 출판사업들이 발전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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