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국내성 시리즈 3 | 고구려 국내성이 수도가 아니라 궁궐인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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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520회 작성일 23-06-09 00:10본문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고구려 국내성 시리즈 3
고구려 국내성이 수도가 아니라 궁궐인 증거들?
한 나라의 수도인가를 평가하려면 기능적 관점으로 위치 규모 , 체제를 검증해야 한다. 또한 미학적 관점으로 평가해야하며, 의미적 관점, 즉 수도 선택과 건설에 담긴 -사상도 살펴보아야 한다.
수도,대도시를 구성하는 체계는 다음과 같다.
궁궐 안--
임금이 거주하고 정사 집행
중요 관청 등 정치시설물
호위 군대
신전, 사당
궁궐밖
방어용의 군사시설
절 등 종교시설물
시조묘 또는 사당은 필수
귀족 등 지배계급의 주거
지배계급의 문화시설들
고분군
시장
산업 시설--대장간 등
창고,
행정기관
대외교류와 연관된 시설
이러한 수도에 필수적인 체계론을 적용하여 소위 국내성의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국내성은 궁궐이고, 도성은 집안분지 동서 10km 남북 5km의 분지이며, 수도는 주변 일대까지 포함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증거들은 무엇일까?
궁궐-벽들로 둘러싸인 둘레 2,7km 정도의 돌담
절-동대사 유적 및 당간지주
장군총(시조묘, 신전)
국동대혈-유화부인인 수혈신이 거주
*방어체제는 다음 같다.
환도산성—군사수비성, 별궁이다.
"삼국지", 위서 고구려에는 ‘환도성 아래에 도읍을 정했다’
대무신왕 11년(A.D. 29) 한나라가 침공할 때 수 십일 간 장기농성전을 펼쳤다는 기록이 있다. 국내성(집안시) 북방 2.5km 지점에 있으며, 산성자 산성, 위나암성으로도불리워졌다. 환도산의 정상은 약 676m인데, 산성은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며, 성벽의 길이는 6,951m이다.
국내성은 집안시 주변의 산능선과 골짜기들을 둘러가며 초소나 망파령 관애, 관마장 관애 등 차단성 등 크고 작은 방어시스템들이 행성처럼 구축됐다. 그리고 남쪽의 압록강은 궁성 및 도성의 방어체제막 역할을 했다.
고분군들은 1960년대 중반께 조사한 결과 약 12000여기로 추산됐다. 산성하 고분군, 칠성하고분군, 만보정 고분군, 마선구 고분군, 장천 고분군 등이 있다. 시내를 나가면 오녀봉 아래에 채석장 유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특히 공간 개념을 교정해야 한다. 고구려의 수도에 대해서는 ‘궁’ 및 ‘도성’, ‘수도’에 대한 학문적인 이론과 사실을 바탕으로 규명해야 하며, 특히 그 시대 고구려의 역사와 국력, 활동 규모, 방식 그리고 세계관을 고려하여 탐색하고 규명해야 한다.
통념상 국내성으로 알려진 둘레 약 3km가 안되는 성벽 안은 궁일뿐이고, 도성은 동서 10km 남북 5km의 현재 집안 분지이며, 수도는 압록강 남쪽이 일부 지역을 비롯해서 동과 서의 공간들을 포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쪽의 관매장 관애와 서쪽의 망파령 관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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