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국내성 시리즈 2 | 국내성은 방어, 농업, 어업에 좋은 항구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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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926회 작성일 23-06-09 00:10본문
[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고구려 국내성 시리즈 2
국내성은 방어, 농업, 어업에 좋은 항구도시였다.
집안을 들어서면 언제나 한결같이 포근하고 넓은 데다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옛 서울이나 백제의 부여, 일본열도의 아스까에 이l르기까지 우리민족이 골라서 정착한 터가 갖는 느낌은 아늑함과 편안함이다.
동경 125도 45분~126도 30분, 북위 40도 52~41도 35분으로 위도도 높고 장백산맥의 가지인 노령산맥에 둘러싸인 산간도시이다. 또한 계절풍 기후대이고, 노령산맥의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북풍을 막아주며, 남쪽에서는 압록강이 온대 계절풍을 실어다 준다. 그래서 1년 평균 기온이 6,5도 정도이다.
만주에 사는 중국인들이 집안을 ‘새외(塞外)의 소강남’이라고 찬탄한다.
험준한 노령산맥의 산군들이 첩첩으로 쌓인 산골인데다가 환인에서 집안까지는 현재 도로로도 100여 km이나, 말타고 3일 만에 도착했다. 동서 10km, 남북 5km가 되는 폭이 좁고 긴 분지와 들판이 있다. 시내 북쪽에는 禹山이 가파르게 솟아있고, 그 너머에는 해발 700m 가까히 솟구친 丸都山이 겹으로 북풍을 막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통구하를 건너 七星山이 가파르게 솟아있고, 남으로는 압록강물이 파란 띠를 이루고 그 너머로 북한 땅에는 웅장한 산들이 방패처럼 펼쳐져 있다. 완전에 가까운 분지이다.
이미 3, 4천 년 전에도 사람이 살았던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구려의 원류가 되는 맥족의 문화유적에 속하는 석기와 도기들도 압록강과 혼강 유역에서 발굴되었다. 고분들에선 흙그물추, 낚시고리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압록강의 물로 농사짓기에 편하고 좋다. 주민들은 홀본부여 또는 원조선이라는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그 다음에는 한족들이 일시적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이 다시 옛 땅을 수복한 것이다.
집안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도 접근이 곤란하고 대피가 가능하며, 전선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전략적 요새이다. 불편한 점이 있지만 교통의 요지이다. 만주와 한반도 서북부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압록강 수로를 이용하면 중간의 몇몇 지역들을 경유하여 마지막 항구도시인 서안평(신의주 단동지역)을 통과하여 황해로 진출하는 수로망을 활용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 국내성은 내륙 산 가운데 있으면서도 바다로 연결되는 일종의 항구도시이다. 궁궐의 남쪽 벽에는 압록강과 만나는 지점에 돌로 쌓은 부두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부분은 30m정도인데 국내성의 성벽을 쌓은 수법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 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여 진다.(손영종)
윤명철 지음 : 고구려 해양사연구 / 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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