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비 2부 | 광개토태왕비는 장엄미, 신령미, 생명감 넘치는 고구려 미학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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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924회 작성일 23-06-09 00:10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2eIPSthf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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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교수의 역사대학] 광개토태왕비 2부

광개토태왕비는 장엄미, 신령미, 생명감 넘치는 고구려 미학의 표상이다. 


광개토태왕비는 414년 즉 태왕이 돌아간지 2년째 되던 해에 젊은 임금인 장수왕이 위대한 임금이면서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비석은 어떤 의미와 내용들을 담아내고 전달하는 것일까? 


왜 고구려인들은, 장수대왕은 그 부왕인 동아시아의 영웅을 기리는 비석을 이런 불완전한 모습으로 놓아두었을까? 이 어수룩함과 무정제성 속에서 무위자연, 형식보다는 본질을 더 좋아하고, 덜 정제된 사회, 덜 형식화된 세상을 원한 고구려인들의 사유를 느낀다. 그들의 미의식과 시대정신을 느낀다.


미의 정의는 시대와 공간 상황 집단과 인간에 따라 다르고, 정의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전성기의 고구려는 하나의 국가영토 안에 색다른 자연환경,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하면서 복합적인 역사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하나가 잘게 쪼개져 흩어진 다양성이나 이질집합체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다름을 유지하면서 하나로 모이는 다양성을 지닌 다문화국가 다문화체제가 되었다. 터와 구성핵들이 전체와 부분으로서 유기적인 연결을 맺고, 여러 종류의 문화를 한군데로 섞어서 독특한 성격을 창조한 이후에는 주변지역으로 전파하는 배급처 역할을 하는 ‘혼합문명’의 성격을 지닌 국가였다. 고구려인들이 창조한 문화예술은 원조선을 모델로 삼아 재현하면서 고구려가 지향하는 미의식과 세계관을 표현했다. 


高句麗美는 몇 가지 단어로 정의한다. ‘자의식과 자유의지‘’다양성과 고유성‘’동중중‘ 지미와 소박’ ‘상생과 조화’‘ 합리와 서정’이다. 이러한 고구려 문화와 미를 통해서 우리역사와 문화예술을 총체적 전일적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문화 예술에 변질이 생겼다. 만주 지역의 자연환경과 종족 생활 등 인문환경을 상실하면서 북방문화와 연결된 문화와 예술의 내용과 형식들이 불완전하게 계승되었다. 또한 군사정치적인 패배로 인하여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고, 자의식이 약화되었다. 따라서 고구려의 미는 발해와 신라가 계승하였지만,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윤명철 지음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 "말타고 고구려 가다" " 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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