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빈틈] 동아시아 최초로 건설된 도시국가 량주고성(良渚古城)의 설립자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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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4-10-17 21:06본문
[벽속의 빈틈] 동아시아 최초로 건설된 도시국가 량주고성(良渚古城)의 설립자는 누구인가 !!!
예로부터 중국에 내려오는속담중 천상천당(天上天堂) 지하소항(地下蘇抗)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뜻을풀이하자면 하늘에는천당이있고 땅에는소주와항주가 있다는말로 그만큼 빼어난절경과함께 물산이 풍부해 살기 좋았다는 얘기죠.
벼슬아치나 글좀배웠다는유생들은 술자리에서 이런말을유행시키기도 합니다.
인생을 논함에 있어 젊어서는 소항에서 풍류를 마음껏 즐기고 죽을때는 유주에서만든 목관속에 들어가면 여한이 없다라는 우스갯소리죠.
그만큼 예쁘고 잘노는 아가씨들이 많았으며 기녀들과 한판벌이는 질퍽한밤문화가 유명세를 탓기에 색향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곳저곳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뻗어있는 수로는 물산을 움직이는 대동맥과 같은 역할을 했기에 가히 물의 도시라 할만한데요.
소주의 산당이나 항주의 진회하는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정도로 유명합니다.(삭제)
춘추시대 때 소주는 오나라의 도읍지인 고소성이 있던 곳이며 항주는 월나라의 도읍지인 회계성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유서깊은 지역입니다.
오월동주라는 고사도 전단강이 흘러나가는 항주만에서 유래된 것이죠.
특히 항주는 남송시대 때 임안이라 불렸던 도읍지로 당대 세계관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던 도시였으며 몽골의 침입 때 마지막으로 함락된 곳입니다.
장강과 전단강 사이에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개의 호수 중 하나인 태호가 자리하고 있는데 주변지역의 평균 높이가 해발 5미터가 안될 정도로 지대가 낮은 곳이 대부분이죠.
춘추시대 때 오나라장군 손자가 은거했다고 알려진 고소성근처 궁륭산도 실제 높이는 100여미터에 불과합니다.
서쪽에는 거대한 산악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중원인들은 이를 남령이라 불렀으며 남령 속에는 무협소설 애호가들이 자주 들어봄직한 구화산 천목산 무이산 회계산 괄창산 보타산등 유명산들이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죠.
특히 천목산은 안휘성과 절강성의 경계를 이루는 남령의 주맥중 하나로 주봉인 황산의 절경은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곳이며 관광지로도 유명한데요.
중국에서는 소주와 항주를 포함하는 태호 주변의 땅을 태호평원 또는 환태호라 부릅니다.
지리적으로 환태호는 북쪽과 남쪽으로 장강과 전단강이 흐르며 서쪽에는 남령이라는 거대한 산악지형이 뒤를 받치는 배산임수의 풍수가 돋보이는 곳이죠.
천목산에서 흘러내리는 크고작은물줄기가 많았기 때문에 농경에 매우 유리했으며 방어에 유리한 천혜의 요건을 갖추고있었죠.
고대로부터 오스트로아시아계나 오스트로네시아계 민족이 살던 땅으로 문헌기록에는 백월이 터전을 잡았던 곳입니다.
황하문명세력으로부터 오랑캐라 불리며 무시당했던 곳으로 진시황의 통일전쟁때 중국역사에 편입되었을 정도로 지역색이 강한곳이죠.
그런데 이곳에서 동아시아문명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대단한도시유적이 발견됩니다.
기원전 3천년경 설립된 량주고성의 실체와 함께 최소 군장국가단계에 진입한 통치세력의 존재가 발굴결과 확인된 것이죠.
량주고성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도시유적이며 이는 하나라로 비정된 얼리터우보다 천년이상 앞서기 때문에 허세부리기 좋아하는 중국에게는 아주 좋은 핑겟거리가 되었는데요.
자신들의 역사가 5천년이라 유세를 떨었지만 실제는 하나라를 슬그머니 끼워넣더라도 천년이 모잘랐거든요.
전통적으로 황하문명론을 고수했던 중국 역사학계가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수정된중화문명론을 들고나온배경이 량주고성의 존재와 홍산문화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량주고성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해 량주문화를 꽃피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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