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속의 빈틈] 동아시아 고대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변수 | 요동은 어디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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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4-10-17 20:41본문
[벽속의 빈틈] 동아시아 고대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변수 | 요동은 어디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일반적으로 요동과 요하의 앞글자인 요(遼)는 멀다 또는 아득하다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요동은 아득하게 먼 동쪽의 땅이라는 뜻이며 요하는 아득히 먼곳에 있는 강이란 뜻이죠
요동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고구려인들은 요동성을 오열홀(烏列忽)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요동이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을까요 ?
동아시아 최초의 문자기록인 갑골문에서는 요(遼)라는 단어를 찾지 못합니다.
제사를 지낼때 사용했던 횃불을 뜻하는단어가(尞) 모양이 비슷할 뿐이죠.
고고학적 견해에 따르면 당시 상나라는 북경근처에 존재하던 장가원상층문화집단과 치열하게 싸웠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요.
이들은 유목민이 정착을시도한집단으로 갑골문에 전투기록이남아있는 토방이 바로 장가원상층문화집단입니다.
또한 연산너머 대릉하 유역의 위영자 문화는 고조선의 중심지라는학설이 다수설이죠.
상나라가 위영자문화집단을 인지하고 있었을지라도 이곳을 요동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옛문헌기록을 살펴보면 거리개념이 적용된 오복이라는 관념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천자의 땅인 왕기를 중심으로 천하를 나눈것인데 천자개념이 정립된 서주시대의 표현법이라 보여지는데요
수도를 중심으로 사방 500리를 천자의 땅인 왕기라 불렀으며 왕기로부터 500리마다 전복 후복 채복 요복 황복으로 구획을 나눠 사방 3000리를 천하로 본 것이죠
전복 후복 채복은 화하족이 살던 땅이며 요복과 황복은 오랑캐가 살던땅이라는 설명인데요.
고대중국인들은 인식가능한 범위내에서 가장 먼 거리를 요나 황으로 불렀다는 얘깁니다.
또한 요복은 동이와남만을지칭하며 황복은 서융과북적을의미한다는 기록으로볼때 멀다라는 표현의 유래가 여기에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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