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향기(LEE's History)] 일본어의 아버지, 백제 왕인박사묘(博士王仁至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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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참한역사미디어 댓글 0건 조회 145회 작성일 24-01-18 20:33
유튜브출처 : https://youtu.be/vP3OTcgQp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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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향기(LEE's History)] 일본어의 아버지, 백제 왕인박사묘(博士王仁至墓)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校方市)에 위치한 백제 오경박사 왕인의 묘지입니다. 이곳에는 1971년 오사카시와 히라카타시에 의한 왕인박사 묘비석과 왕인공원(王仁公園)이 조성되어 있으며, 2006년에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건립한 백제문이 왕인박사 묘지 앞에 건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묘지 내의 유적들은 모두 한국어와 일본어로 같이 병기되어 있습니다. 왕인박사는 당시 일본 제15대 오진(応神)천황의 초청으로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가져와 일본에 학문을 전달해 줌은 물론, 일본어의 최초 표현법인 만요가나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오진천황의 네 번째 왕자인 닌토쿠(仁德)왕자의 왕위계승을 권고하는 일본 최초의 와카(和歌)인 난파진가(難波津歌)를 지었으며, 그것은 18세기 일본 시문학자 에무라 홋카이(江村北海, 1713~1788)의 목판본(日本詩史) 발굴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백제의 왕도인 충남 부여에는 구두레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구두레는 ‘큰들’ 또는 ‘큰 나라’의 뜻을 가진 백제 고어입니다. 일본에서 백제를 나타내는 구다라는 부여의 구두레에서 따온 만요가나(萬葉假名)의 음독(音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요가나는 우리나라의 이두(吏讀)와 같이 한자어를 소리(音)와 새김(訓)으로 읽는 최초의 일본어 문자 표현법으로, 이 표현법을 최초로 만든이가 바로 백제 왕인박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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